-
시계는 언제까지 우리의 손목에 있을까? [손목시계의 역사]column 2023. 3. 15. 18:24반응형
손동작으로 전화기를 표현하라고 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젊은 세대는 엄지와 새끼를 편 채 엄지 손가락을 귀에 가져다 대는 제스처대신
스마튼폰을 쥐는 듯한 제스처로 전화기를 표현한다고 한다.
스마튼폰이 등장하고 불과 십몇 년만에 '전화기'에 대한 이미지가 새롭게 정의된 것이다.
그렇다면 시계는 어떨까?
아직까진 많은 이들이 시계를 표현하거나
시간을 나타낼때 자신의 빈 손목을 가리킨다.
많은 이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시간을 확인하지만
아직까지 시계는 손목 위에 있는 물건이라는 이미지가 살아남아 있는 셈이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많은 이들이 시계산업이 죽을 거라고 얘기했지만
의외로 시계 시장은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고급시계 위주로 소비가 전환되며 수출량은 감소하지만 수출액은 드러난 것인데
럭셔리 시계 위주로 소비자들의 성향이 변하며
시계는 점점 단순히 시간을 보여주는 것 이외에
사회적 지위,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는 수단이 되고 있다.
오늘은 손목 위의 지적센스라고 불리는 손목시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Pocket to Wrist'
손목시계의 전신이 된 제품은 회중시계이다.
회중시계는 과거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회중시계는 영어로 Pocket watch로 표기하는데
주로 고급진 워치체인에 걸어 귀족들이 연미복에 착용하거나
노동자들이 줄 없이 워치 포켓에 넣어 사용했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워치 포켓이란 청바지에 달려있는 작은 주머니를 뜻한다.
리바이스가 처음으로 청바지를 생산하던 시기엔 회중시계가 대중적이었으므로
청바지에 워치 포켓을 달아 준 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저 작은 주머니에 시계를 넣고 다니는 이는 아무도 없겠지만
og를 대표하는 디자인으로 남아 현재까지도 워치 포켓을 단 채 출시되는 청바지가 많다.
회중시계는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의 손목에 안착하여 Wrist watch가 되었다.
회중시계가 사라진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우선 운송수단의 발달로 자동차, 비행기가 대중화되며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싶어 했고
특히 세계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이 즉각적으로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회중시계를 손목에 감기시작하며 회중시계는 자연스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차 세계 대전 때는 보급품으로 손목시계를 지급하기도 했다.)
시계브랜드에서 공식적으로 출시된 최초의 손목시계는 여성용이었다.
최초의 손목시계는 19세기 초 나폴리왕비를 위해 브레게가 제작한 시계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을 기념하여 브레게에선 Queen of naples(reine de naples)라는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스위스 최초의 손목시계로는 1868년에 제작된 파텍필립의 시계가 있는데
역시나 화려한 치장을 한 여성용 제품이었다.
남성용 손목시계의 시작은 1880년 경 독일 황제 빌헬름 1세가
해군 장교를 위한 손목시계 제작을 의뢰하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브랜드에서 출시된 최초의 치장용 남성용 시계는 1912년에 세상에 나온 까르띠에의 산토스다.
산토스는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는 까르띠에의 스테디셀러이기도 하다.
'Quartz crisis '
포켓에서 사람들의 손목에 안착한 시계는 20세기 중반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바로 '쿼츠파동'이다.
1969년 일본의 세이코는 쿼츠 아스트론이란 제품을 발표하는데
기계식과는 다른 새로운 무브먼트를 장착한 쿼츠시계는 시계산업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새로운 무브먼트에 대한 연구는 세이코가 아스트론을 내놓기 전부터 있었고
스위스 시계 회사에서도 60년대에 쿼츠시계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배터리로 구동되는 시계를 내놓기는 했지만
기존 시계 강국이 아닌 일본이 내놓은 쿼츠시계가 세계를 강타했다는 이미지 등 때문에
많은 이들이 쿼츠 아스트론을 기준으로 쿼츠 파동이 시작됐다고 표현한다.
사실 평소 시계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 쿼츠라는 단어는 생소할 수 있는데
쿼츠시계는 쉽게 말해 배터리로 작동되는 시계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이렇게 말하면 "그럼 이전까진 배터리 없는 시계를 찼다는 건가?"라는 질문이 따라오는데
"당연히 그렇다."가 질문에 대한 답이다.
오토매틱(기계식) 손목시계는 착용자의 동력을 통해 움직이는 시계다.
직접 동력을 주입하는 (시계밥을 준다고 표현한다) 방식의 매뉴얼 와인딩 방식도 마찬가지이다.
착용하지 않고 오래 두면 시계는 멈추고 아무리 정교한 오토매틱 시계도 오차는 발생한다.
그에 반해 쿼츠시계는 그 오차도 훨씬 적고 배터리를 한번 넣어주면 적게는 3년 길게는 10년은 문제없이 작동을 한다.
더 저렴하고 더 정확한 시계의 등장이었으니 쿼츠 파동이 시계 산업에 새로운 국면을 제시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뿐만 아니라 오토매틱 시계는 3~5년 주기로 오버홀(분해 점검)을 해야 하고
시계를 자주 차지 않는다면 워치와인더에 보관을 해줘야 한다.
오토매틱시계는 가격도 고가인데 시계 값뿐만 아니라 유지비용까지 많이 드는 제품인 셈이다.
그렇기에 저렴한 쿼츠시계의 등장은 손목시계의 대중화를 이끌었다고 볼 수도 있다.
세이코의 쿼츠 아스트론이 세상에 공개되고 약 10년 만에
쿼츠 시계의 인기는 오토매틱 시계의 인기를 앞지른다
고가의 사치품이자 예술작품이었던 손목시계가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변화를 맞이한 것이다.
스위스의 시계 브랜드들은 이런 쿼츠파동에 쉽게 동참하지 못해
결국 반절이 넘는 스위스의 시계업체들이 문을 닫는 결과를 맞이헀다.
그들에게 시계란 장인이 만든 메커니즘의 결정체였기에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쿼츠 시계를 받아들이기를 주저한 것이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고
결국 1980년대에 들어 스위스 시계산업은 저렴한 쿼츠 제품들을 생산해 나갔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회사의 파산과 기업 간의 합병, 인수가 있었는데
1983년 스위스 최대 시계 그룹이었던 ASUAG와 SSIH가 합병되며 후에 스와치 그룹이 탄생하였고
(처음 이름은 SMH였고 1988년에 스와치 그룹으로 변경)
스와치 그룹은 현재 리치몬트, LVMH와 함께
시계시장의 3 대장으로 군림하고 있다.
동양의 섬나라에서 출시된 시계하나가 유럽 한 국가의 산업을 뒤흔든 사건이
쿼츠파동인 셈이다.
참고로 쿼츠와 오토매틱을 구분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초침의 이동방식이다.
한 칸 한칸 점프를 하듯이 움직이는 초침은 쿼츠이고
물 흐르듯 막힘없이 움직인다면 오토매틱이다.
'80's Fashion Watch'
쿼츠 시계가 대중화되며 손목시계는 하나의 캐주얼한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80년대에는 지금도 사랑받는 디자인의 캐주얼 워치들이 많이 출시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스와치와 지샥이 있다.
스와치의 시계는 알록달록한 색감을 입혀 좀 패셔너블한 느낌이라면
지샥의 투박한 디자인의 디지털시계들은 군인, 경찰관 시계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지샥의 시계는 영화 스피드에도 등장하며 큰 인기를 누렸는데
튼튼하고 투박한 시계라는 이미지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또 007 제임스 본드 하면 대부분 롤렉스나 오메가의 시계들을 떠올리는데
70년대 말에 개봉한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선 본드가 세이코의 쿼츠 시계를 차고 나오기도헀다.
이외에도 80년대에는 다양한 디자인의 쿼츠시계들이 출시되었고 사랑받았다.
이 시기에 국내에선 돌핀 시계가 유행이었는데
한독 시계 사업부에서 론칭한 돌핀시계는
레트로 무드를 무기로 아직까지 출시되고 있다.
오토매틱 시계의 황금기를 1940~60년대로 뽑는 이들이 많은데
쿼츠 시계의 황금기는 80년대 아니었나 싶다.
이런 빈티지한 디자인의 쿼츠시계들은 현재도 힙스터들의 애용품이기도 하다.
손목에 차는 액세서리라고 생각했을 때 쿼츠시계는 꽤나 리즈너블 한 아이템인 셈이다.
'Digital crisis?'
20세기는 측량의 시대였다.
빠르게 발전하는 산업들에 맞춰 시계들도 발전해 나갔고
세계전쟁과 냉전시대는 국가 간의 기술력 다툼을 부추기기도 했다.
하지만 닷컴버블과 함께 시작된 21세기는 조금 달랐다.
인터넷이 온 세상에 깔리고 스마트폰까지 등장하며
어제와 오늘도 다르다는 말이 익숙한 21세기에 손목시계는 또 하나의 변화를 맞이한다.
바로 스마트워치의 등장이다.
2014년에 세상에 등장한 애플워치는 현재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시계다.
(그냥 1등도 아니고 경쟁자가 없는 압도적인 1등이다.)
애플워치는 세상에 등장한 지 4년 만에 스위스 시계산업을 앞질렀다.
처음 스마트워치가 세상에 등장할 때만 해도
스마트워치를 두고 시계가 아닌 전자기기라고 칭하는 이들이 많았고
많은 시계브랜드들이 스마트워치는 자사의 시계들과는 다른 카테고리의 제품이니
손목시계 산업에 끼치는 영향이 없을 거라 말했지만
세계인의 손목에 안착한 것은 결국 스마트워치였다.
스마트폰과 연동을 통한 다양한 기능들
거기다 운동, 수면 관리까지 도와주는 스마트워치에 비하면 날짜와 시간만 보여주는
기존의 손목시계들은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현재 손목시계는
고가의 오토매틱 시계
중저가의 쿼츠시계
스마트워치
이렇게 3파전이라 할 수 있는데
재밌는 점은 이 3가지 종류의 시계들이 조금씩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며 경쟁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스마트워치들은 다양한 명품 브랜드와 콜라보를 하며 패션시계로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워치의 최대 장점 중 하나는 다양한 인터페이스와 줄질인데
애플워치의 인터페이스를 기존의 시계브랜드처럼 꾸미는 이들 또한 많이 있다.
하나의 스마트워치의 여러 시계의 느낌을 낼 수 있는 셈이다.
또 애플에서 최근에 출시한 애플워치 울트라는
고가의 다이버 워치가 굳이 필요한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롤렉스, 오메가, 파네라이의 다이버 워치를 애플워치가 대체하게 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스마트워치의 광품에 합류하고자 기존의 시계 브랜드나 명품 브랜드에서
스마트워치를 출시하는 일 또한 있었다.
물론 높은 가격대와 스마트폰과의 연동성에서 오는 아쉬움 탓에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우리도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한 제품들이었다.
물론 쿼츠시계 또한 꾸준히 수요가 있다.
유명인 기업인이나 연예인의 착용으로 인기를 탄 저렴한 쿼츠시계들은
시계입문자들에게 좋은 제품이 되어주고 있고.
깔끔한 다지인의 스와치, 카시오의 시계들은 가격도 매우 저렴한 편에 속해서
이런 제품들을 모으는 마니아들까지 있을 정도다.
앞서 단락에 나왔던 80's 스타일의 쿼츠시계들 또한 꾸준히 수요가 있는 편이다.
다양한 콜라보를 통해 쿼츠시계는
패션시계라는 기존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고 있기도 하다.
최근엔 오메가와 스와치가 콜라보를 하며 큰 이슈를 낳았다.
스와치의 시계가 리셀이 되는 진풍경을 보여주기도 하며
퀄리티 관련, 판매방식 관련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협업인데
문스와치로 인해 쿼츠시계에 대한 관심도가 부쩍 상승한 것 또한 사실이다.
판매량만 두고 보았을 때 승자는 물론 스마트워치이다.
(그중에서도 애플워치)
스마트워치의 등장은 쿼츠파동보다 큰 전환점이며
10년 뒤엔 모든 손목시계가 스마트워치일 것이라 보는 시선 또한 있는데
우선 당분간은 3파전이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분명한 것은 스마트폰의 등장이
우리의 손목시계까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잡스 당신은 대체..)
'마치며'
시계는 자동차와 닮은 점이 많다.
누군가는 고성능의 슈퍼카를 원하고
누군가는 실용성 좋은 경차를 선호한다.
얼리어 답터는 전기차를 타보고 싶어 하고
빈티지에 환장하는 사람 또한 있다.
시계도 마찬가지다그래서 그런지 자동차 회사와 시계브랜드의 협업을 종종 볼 수 있는 편이다.
정확한 시간을 보여주는 핸드폰을 모두가 들고 다니는 세상에서
더욱 정교한 메커니즘을 가진 시계들은 어쩌면 더 이상 의미 없는 제품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시계브랜드들은 자사의 새로운 무브먼트를 개발하고
작은 손목시계에 자신들의 철학을 담아내려 애쓰고 있고
말도 안 되는 가격의 제품들이 사람들의 손목으로 향하고 있다.
더 이상 필요에 의한 개발이 아닌 개인적 만족이나
쓸데없는 하이테크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시계 브랜드에게 장인정신이란 브랜드를 관통하는 하나의 모토이다.
손목시계는 자신의 경제적 지위, 지적센스,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는
가장 간단한 도구이자 패션 아이템이다.
지금 이 글을 보는 여러분의 손목에는 어떤 것이 올라가 있는가?
시간이 더 많이 흐른 뒤
몸으로 말해요 퀴즈에 '시계'가 나온다면
사람들은 어떤 제스처를 취할까?
반응형'colu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제는 패션 아이템일까? [폰 케이스 이야기 feat.케이스티파이] (2) 2023.05.28 디젤이 다시 핫해진 이유 (0) 2023.03.27 일본에 복각 브랜드가 많은 이유 (0) 2023.02.05 아디다스 다음은 리복? 재도약을 노리는 리복 이야기 (0) 2022.12.28 영화속 패션 읽기 #5 '테넷'편 (0) 2022.10.15